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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기다리는 동안

애(哀)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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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가족의 애통해 하는 모습 못지않게 가슴 아픈 것은 행방불명되어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일 것이다. 사망자들은 붙들고 울 묘지라도 있지만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그것조차도 없다. 5·18 당시 불과 15살이었던 아들의 행방을 찾을 길 없는 고재덕의 어머니 손금순씨는 아들에 대한 기억, 그에 대한 그리움을 어찌 할 수 없어 아들이 그립고 보고 싶으면 5·18민주묘지를 찾아 시신은 없는 아들의 비문을 손으로 쓸고 닦는다고 하였다.(5·18민중유공자유족회 구술, 5·18기념재단 엮음,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1>>) 이들 행방불명된 가족을 둔 어머니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문 앞을 서성이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김경주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문을 열고 상체를 반쯤 내밀어 노안을 잔뜩 찌뿌리며 먼 곳을 바라보고 서있는 한 노모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늘도 멀리서 누군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발소리에 노인은 문을 빼꼼 열고 어둠속을 바라본다. 기다리는 대상은 어쩌면 새벽에 일 나간 아들 며느리 혹은 도시로 공부하러 간 손자 손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저 저물녘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을 기다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그녀 얼굴에 진 깊은 주름과 문설주에 어려 있는 핏빛 기억이 암시해준다. 김경주, <너를 기다리는 동안>, 1990년 기다림의 초조하고 간절한 마음은 같은 해 발표된 황지우의 동명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 담긴 기다림의 절실함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게눈 속의 연꽃>>) 강요배, <동백꽃 지다>, 1991년 유가족의 슬픔을 보여주는 일련의 작품들은 1980년대 후반 이후에 더욱 많아졌다. 1987년 광주 청문회와 6월 항쟁이후 정국은 표면상 유화국면에 들어갔고, 광주는 민주화운동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요구받았으며, 이에 응하는 작가들의 부담은 적지 않았다. 80년대 후반 공식 미술제인 ‘5월제’가 열린 후 광주미술인공동체 창립기념 5월전에 참가한 27명의 미술인들의 작품은 한결같이 “5월이 주는 의미가 무겁고 벅차다.”는 목소리를 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진상의 고발보다는 아픔을 공유하고자 하는 진혼을 강조한 내용이 많았다. 이후 90년대 공식화된 일련의 미술제들에서는 더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5월 정신을 기리고 해원(解寃)의 의미를 담은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이선옥, <눈물로 그린 그림>, <<우리시대의 슬픔>>,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151-153쪽.  
정명중 외저, <<우리시대의 슬픔>>, 감성총서 7,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7권]우리시대의 슬픔, 15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