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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곡과 진묵대사

노(怒)
부정적 감성
구비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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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서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捿寺)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聖徒)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黙)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가면서 봉곡이 곧 후회하며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가져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 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간 책을 돌려 달라 하거늘,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리라.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게 되었다.
그 뒤에 진묵이 상좌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하고 떠나거늘,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지 얼마 안됩니다’하니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참에 받아야 하겠다’하고 ‘법당 문을 열라’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하거늘,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는지라,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하며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봉곡이 ‘저것은 요귀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하며 일일이 다 태워버리니,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보라’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고 하는지라,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하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 갔느니라고 하시니라. 
유자(儒者)인 김봉곡이 승려인 진묵대사에게 유교서인 {성리대전}을 빌려주었으나 진묵대사가 그 내용의 무용함을 주장하여 폐기처분하였다. 진묵대사가 {성리대전}을 버린 것과 아울러 그가 그 책의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있는 것에 김봉곡이 시기하여 화를 내었다. 김봉곡은 진묵대사가 잠시 유체이탈한 사이에 진묵의 몸을 불태워버림으로써 진묵의 영혼이 다시 몸으로 되돌아올 수 없도록 하였다. 진묵대사는 자신의 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김봉곡을 저주하며 서양으로 건너갔다. 진묵을 뛰어넘지 못하는 자괴감과 질투심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 단절의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 상황은 김봉곡의 소심함과 진묵대사의 뛰어남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이 이야기는 유학자와 불교승려인 김봉곡과 진묵대사의 관계를 통해 유교와 불교의 갈등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김봉곡, 진묵, {성리대전} 
증산도 경전 {道典}, PP. 51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