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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말 충신[두문동 72인, 포은과 선죽교]

노(怒)
부정적 감성
구비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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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얘긴대, 두문동- 두문동, 이거 막을 두(杜)짜 하구, 응- 두문동 칠십이(杜門洞 七十二)라는게 고려 왕건 태조적에 이성계가 인저 반역을 해구 하니까, 그때 그 조정에 있던 사람들이 충신은 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이래는 뜻에서 일흔 두 사람은 나왔어요. 거기서 나와 가지구선 저 산골 어디 그 두문동이라는 골짜구니 있는데, 거기 가서 배포를 차렸어요.
[청중 : 지금 말하자면 동굴이여, 동굴.] 그렇지요. 그 분들이 거기서 뭐를 했느냐 하면 키- 키- 이렇게 까부르는 키- 또 동고리 짝, 동고리짝 있잖아요? 그전에 이렇게 에 그 [청중 : 백정들이나 하는 거예요.] 그렇지. 이 저 뭔가? 동고리짝이라구 이 치룽처럼 생긴게 거- 그걸 버들루 맨든 게 있에요. 그런 거. 또 갖바치라구 신발을 올코신이라구 있어요. 외코신. 시방은 인저 가다가 있어가지구, 신발이 가다가 있어 가지구- 양쪽 가다가 다 있지만, 그전에- 옛날에 우리 어려서 신을 때에는 이펀짝 이펀짝 신는게 아니구 그냥 한- 골이 하나에다가 씌어 내려와서 똑 같은 신발을 이리 신구 저리 신구 그렇게 했었에요. 그래서 그 갖바치예요. 그 갖바치수가, 수놓구 털실 놓구 바닥 꼬매구 이거 배피 붙이구 하는 것이가 일흔 두 가지라는 거예요. 일흔 두 사람이 한가지씩 연구를 해가지구서 그 것이가 하나 이루어졌다는 거예요.
그 신발이 그래서 그 갖바치들이 해먹는다. 인저 그런데, 이 사람이 인저 방원이가- 이 방원이가 정포은(鄭圃隱) 선생을 선죽교 다리에서 때려죽-[조사자:타살할 적에] 네. 타살할 적에, 정포은 선생은 그걸 미리 알았어요. 미리 알아 가지구 그 하인이 누구냐 하며는 용씬데, 그 용씰 보구 하는 소리가,
“얘! 아무개야.”
“예?”
“오늘 오시에 내가 선죽교 다리에서 죽는다. 죽으니까 너 말고삐를 길죽하게 쥐구선 내 뒤를 바짝 쫓아오지 말구 저만큼 서서 오너라.”
그러니까 이 양반이 하는 말씀이- 아 저 이 하인이 하는 소리가 뭐라구 하니,
“그 대감 무신 말씀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감이 돌아가시는데 지가 살면 뭘 하것습니까?”
이 말이야. 그러니깐,
“대감이 돌아가실 바에는 저도 그 한 칼에 맞아 죽겠십니다.”
말이야. 결국 더 바짝 말고삐를 들구 들어갔다. 그러니 아니나 다를까, 선죽교 가는 데 쇠두깽이를 쳐서 그걸 다- 그 죽었다는 얘기. 그건 포은 선생이 그렇게 맞아 돌아가셨다는 얘기고. 
고려 말에 나라의 정세가 악화되고 이성계가 세력을 얻어 조선을 건국하려면서 사람들의 뜻이 갈리게 된다.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 중 72명의 신하들은 두문동으로 은거하면서 신발을 만든다. 정몽주 역시 72인처럼 고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변함없음을 확고히 한다. 정몽주의 마음이 확고함을 알게 된 이방원은 이성계의 병문안에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죽인다. 지지를 얻지 못한 이방원의 좌절감이 분개로 이어지고 결국 살해라는 비극적 결말을 도출하고 있다.  
조희웅, {한국구비문학대계} 1-9, 경기도 용인군 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99-100쪽. 
조희웅, {한국구비문학대계} 1-9, 경기도 용인군 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