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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만한 폭력의 징후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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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의혹과 불신, 세계적인 금융 파동의 여파로 인한 경제 위기를 경험하였다. 이 시기, 통치권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나타났던 광범위한 소통의 장애는 심각한 사회적 후유증을 낳았다. 당시에 ‘소통의 부재’이라는 말이 유행하였고, ‘집단지성’이라는 신개념과 ‘미네르바신드롬’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나타났다. 2009년에는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죽음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의혹 속에 4대강 사업이 착공되었다. 2010년에는 한국사회의 정의로움을 묻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사회적 이슈였다. 2011년에는 ‘정의’에 이어 ‘공정사회’라는 개념이 관주도로 호명된다. 특권층의 비리와 부패를 익숙하게 경험한 사람들에게 공정사회는 한마디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다. 공정이라는 상식의 수준조차 강고한 도덕적 자의식에 휩싸인 사람들에 의해 형해화 되고, 은폐된 권력의 도덕적 불감증에 사람들은 절망한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선거와 18대 대통령선거를 치른 한국사회의 핫 이슈는 ‘진영논리’였다. 2013년 새로 출범한 정부는 ‘행복한 나라’를 표방한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종북척결’과 같은 강고한 진영논리가 횡행하고 대선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촛불집회가 재연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개인 및 사회적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해의 충돌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대화와 토론보다는 다름 자체가 문제시되고,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요구는 해묵은 흑백논리에 의해 재단된다.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불안과 공포의 위기적 징후는 특정한 집단과 매체에 의해 조장된다. 지식인과 정치인은 불안과 위기를 조장하는 담론을 생산한다. 전문가를 자처한 인사들은 현상에 대한 엄밀한 분석보다는 ‘통속적인 견해’를 펼친다. 이들은 자신의 언사를 마치 ‘파이널 버캐뷰러리final vocabulary’인양 주장한다. 자본에 편승한 주류 매체는 이것을 확대재생산 한다. ‘위기’와 ‘불안’을 기민하게 마케팅에 연동하는 상업자본은 현실을 은폐한다.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현실은 매스-미디어의 뒤안에서 묻히고 대중은 여과된 정보만을 접수한다. 알 권리를 제한한 표백된 보도와 상식적인 견해를 부풀려 확대하는 황색저널리즘의 의도는 불순하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1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1조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헌법에 명문화 되어 있는 대한민국은 권력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국체로서의 ‘공화국’이고, 정체로서의 ‘민주국’이다. 민주공화국의 관건은 ‘주권의 주체’인 ‘국민’의 개성에 달려 있다. 모든 국민은 자유로운 생각과 의사표현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다수의 폭력은 교묘하게 은폐되어 소수자를 강박한다. 다름을 이유로 행사되는 동일성의 폭력은 획일화된 국가주의 정체성을 강요한다. 자신들을 애국시민이자 애국단체회원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국가주의’라는 이름으로 규탄한다. 보수논객을 자처하는 식자들은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단죄한다. 이들은 “극소수의 종북세력들만 제거”하면 “어디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한다. 한다. 게다가 이들은 2030세대의 봉기를 말하면서, “2030세대들에게서 애국진영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뉴데일리, 2013.8.15 기사) 그런데 만일 다수가 강요하는 ‘획일화된 동일성’을 거부한다면? 그렇다면, 여지없이 거부자는 ‘종북’이 되고, ‘좌파’가 되어 척결의 대상이 된다. 다름에 대한 다수의 불안함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암약하는 ‘그들’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공포와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순정성을 위해 다름의 ‘척결’을 주장한다. 과연 누가 누구를 척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노래하지만, 현실은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공화국인가?’를 되묻게 한다. 다름을 겁박하는 폭력은 두려움과 유동하는 공포를 낳고 맹목적인 순종과 굴종을 강제한다. 분노하면서도 분노할 수 없는 현실은 그래서 부조리하다.  
 
김경호, <분노한다 고로 살아간다>,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61-264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61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