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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도는 노동자, 진을 빼는 노동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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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어느 일요일, 휴일노동을 하고 돌아오는 오명순 씨를 만났다. 그이는 여전히 파견노동자이고, 휴대전화 배터리를 조립한다. 예전에는 작은 배터리였는데 이제는 스마트폰 배터리라 제법 크다. 3년 전 일했던 곳에서는 모두 다섯 달을 일했다. 연장된 계약 기간 한 달을 남기고 회사에서 그만 나오라 했다. 오명순 씨가 입사 첫날 느꼈던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노동 현장에서 해고는 어려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다. 해고는 일상이 되었다. 그새 오명순 씨는 몇 군데 일자리를 떠돌다 2012년 11월부터 경기도 금정에 있는 휴대전화 배터리 조립 회사에서 일해 지금에 이르렀다. 파견노동자이지만 따로 계약 기간은 없고, 2년이 넘으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준다고 한다. 하지만 오명순 씨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정년이 55세인데 오명순 씨가 올해 그 나이가 되었다. 해고에 대한 불안이 없는 것 말고는 3년 전과 비교해 그다지 좋아졌다고 말할 게 없다. 출퇴근길이 멀어져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늦게 집에 온다. 3년 전에는 상여금 50프로를 받았는데 여기는 상여금이 없다. 임금이야 3년 전이든 지금이든 딱 최저임금이니 비교할 게 없다. 오명순 씨는 출근 이튿날부터는 밤 11시까지 시간외노동을 했다. 회사는 하루 물량 25,000개 생산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걸 다 채울 때까지 노동자들을 붙들어둔다. 밤 10시는 기본이고, 11시를 넘기기도 한다. 3년 전 일하던 곳에서 시간외노동을 많이 했던 이가 124시간이었는데 이제 오명순 씨가 그 기록을 달마다 뛰어넘는다. 지난 회사에서는 웬만하면 일요일에는 쉬었지만 지금은 일요일에도 나가야 한다. 아침 9시가 정규 노동 시작 시간이지만 출근은 8시. 노동자들이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40분간 작업 준비를 한다. 상자에서 오늘 일할 재료들을 꺼내놓고, 라벨을 붙여놓는다는데 이 노동은 무급처리 된다. 따져 물으니 9시부터 생산하는 일만 ‘일’이라고 하더란다. 아니 이 일이 일이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 노동자들은 이런 회사의 처사가 못마땅하고 화가 난다. 다들 불만이다. 겉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오명순 씨가 3년 전에 겪었던 일들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배가 몹시 아파 병원에 가야겠다는 베트남 여성 노동자에게 회사는 그대로 앉아 일하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사람이 빠지면 물량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여자는 다음날에야 시간외노동을 빼고 병원에 갔다. 아, 밥! 여기는 저녁 먹는 시간이 30분이다. 그런데 8시까지 시간외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밥을 주지 않는다. 9시 이후까지 일할 사람만 저녁을 먹을 수 있다. 8시까지 일한다고 해도 하다 보면 30분씩 넘기는 일이 흔하다는데 사람들은 고픈 배로 일을 한다.  
 
박수정, <파견 노동자의 일상>,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318-319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318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