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DB에서 검색하고자 하는 내용을 입력하고 를 클릭하십시요.


   “눈치 보이니까”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내용보기

여기 노동자들은 아무도 회사에 대고 아프다 말하지 않는다. 다들 손목이 시큰시큰 아프고, 누구는 손이 화끈화끈하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느라 허리와 옆구리가 아프고 틀어진다. 고개를 숙여 일하느라 목이 아프다. 갑자기 팔이 안 올라가 놀라기도 한다. 산재지만 산재 치료를 받지 못한다. 티 나지 않게 혼자 한의원 가서 침 맞고 물리치료 받고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손톱이 그렇게 돼도 다른 일로 바꿔달라고 못했어요. 그러면 더 눈치 보이니까요. 정규직 직원 아줌마가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아프다, 힘들다, 그런 얘기 자꾸 하지 말라고. 다른 사람 있는 데에서는 그런 얘기 하지 말고, 하더라도 같이 들어온 사람들끼리만 안 듣는 데서 얘기하라고. 그래서 힘들면 다들 스스로 그만두잖아요. 어차피 바꿔 달라고 해도 바꿔 주지 않으니까. 말했다가 더 힘든 일 시킬지도 모르잖아요.” 아픈 것쯤은 돌아보지 않아야 파견노동자로 일하는 동안은 어디든 사정이 비슷하다. 오명순 씨는 기륭전자에서 일할 때 엄지발톱을 다쳤다. “잠깐 라인이 조금 안 내려오기에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마음이 급하니까 잠근 화장실 문을 여는 걸 까먹고 그냥 발로 박찬 거예요. 발톱을 팍 찧었잖아요. 얼마나 아파요. 현장으로 가려는데 양말에 막 피가 묻어나요, 살이 찢어졌는지. 도로 화장실 들어가서 양말을 벗고 휴지로 닦고 라인으로 갔죠. 그때 기륭 노동자들이 회사에 찍소리도 못하고 얼마나 그랬어요. 병원이 다 뭐예요. 오전에 그랬는데 그냥 휴지로 감싸고 일을 했죠. 점심시간에 3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데 양말에 피가 묻어 있으니까 중국에서 온 동생이 ‘언니 왜 발이 피났어? 언니 내 자리로 가자. 내가 약 발라줄게.’ 그래요. 인정이 있더라고요. 연고랑 반창고를 주더라고요. 하루 종일 찍소리도, 관리자한테 말도 한 마디 안 했어요. 그러고 일을 했다니까요.” 기륭전자에서는 말 없이 사라진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이 회사에서는 파견업체 여직원과 함께 첫 출근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10여 명씩이다. 언제든 ‘나’를 대체할 노동자가 저기, 있다. 아픈 것쯤은 돌아보지 않아야 일을 할 수 있다.  
 
박수정, <파견 노동자의 일상>,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306-307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306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