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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자에 사로잡힌 정치를 벗어나기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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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한국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의 정치면은 연일 저 철지난 노무현 대통령 시절 NLL 관련 발언을 둘러싼 공방과 귀태(鬼胎) 발언 파동으로 시끌벅적하다. 마치 한쪽에서는 노무현, 다른 한쪽에서는 박정희라는 유령을 불러내어 푸닥거리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쪽에게 노무현이 한국 사회의 절대 터부이자 국시인 반공을 훼손하고 주적인 북한에게 놀아난 망령이라면, 다른 한쪽에게 박정희는 일본 제국주의의 주구(走狗, 일제 강점기 그는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였다)이자 유신지배로 대한민국 헌정을 훼손시킨 독재자의 망령일 뿐이다. 2013년 한국 정치는 망자들에 사로잡혀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해버렸다. 이는 지난 시기 한국 사회를 주도했던 신화의 정치와 애도의 정치가 만들어낸 후유증이자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 진영이 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주도의 경제발전과 ‘반공’이라는 신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사했다면, 진보 진영은 애도라는 무기를 통해 그러한 죽음/희생들을 만들어낸 권력의 부도덕성을 공격하는 정치를 구사해왔다. 그리고 거듭되는 공방을 거치면서, 양자는 상대방의 싸움의 무기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고,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그 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한쪽에서는 진보진영에 의한 박정희 신화의 파괴로 나타났다면, 다른 한쪽은 보수진영에 의한 노무현(더 나아가 김대중)의 가치 훼손과 빨갱이 타령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절대적 부정성을 망령에게 덧씌우는 이런 방식의 정치놀음은 민주주의의 현실정치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합의’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파국적 상황은 죽은 자와 만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즉 정당한 애도란 무엇인가의 문제로 우리를 이끈다. 애도의 본질이 결국 산 자는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실을 상실로 받아들이는 것, 즉 과거와 명랑하게 작별하는 것이라면 현재 애도의 정치는 오히려 망자를 산 자들이 이용하는 정치로 화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애도의 거부는 그 죽음이 정치적으로 오용되는 것에 대한 거부이자 그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명확하게 현실에 자리매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애도의 한 방법일 뿐이다. 신화는 결국 신화일 뿐이다. 박정희 정치의 공과는 지금부터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철저히 검증해야 하는 과제이며, 모든 현실정치가 그러하듯 철저한 악도 그렇다고 철저한 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도의 정치는 비극적인 죽음을 빚어낸 권력의 야만성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등의 과업을 수행해왔지만, 망자에 사로잡혀 버릴 때, 그 자신 역시 하나의 신화가 되어버린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영진, <아, 대한민국!>,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93-294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93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