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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들은 노무현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나

노(怒)
긍정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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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죽음에 대한 애도의 온도차에 주목한 이러한 논의들이 한결같이 결여하고 있는 것은, 후자, 즉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작업을 치르면서 사람들이 겪었던 경험의 차원이 아닐까. 물론 용산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온당한 애도를 표할 수 없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는 바로 그 현장이 그들의 욕망이 투영된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철거민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개발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철거가 끝난 자리에 올라서는 현대식 시설들에 긍지를 느끼는 개발의 화신, 파우스트의 후손들이었다. 1997년 IMF 이후 어느 강남 1세대가 토로하는 다음과 같은 고백은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이 땅의 중산층들이 느꼈던 솔직한 속내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벌레들의 세계가 좀 더 진화한 형태로, 아직도 여전히 내 발밑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안착했다고 믿었던 인간의 세계란 결국 착각의 신기루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모든 희망을 버리고 위악의 제스처로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박해천, <<콘크리트 유토피아>>) 대선 직전 터진 거대한 비리사건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지지율로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것 역시 그가 유일하게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 성장’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아니, 2008년 대선의 저조한 투표율은, 이상은 결국 현실 정치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깨달아버린 사람들의 체념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2009년 1월에 터진 용산 참사는 자신들이 애써 눈감아왔던 무서운 실재가 귀환하는 사태였다. 그들은 그 실재의 처참함에 일단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경제성장이라는 공약을 선택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가치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주체적 결단이라기보다, 연민이라는 감정의 중화,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이웃이기도 한 철거민들로부터 형이상학적 철거민을 분리해내고 그들을 비인격화함으로써 태고의 도덕적 충동들의 영향을 중립화하는, 이미 과거 제 3제국 시기에 너무나 효과적으로 작동한 일련의 메커니즘의 결과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철거민들의 운명과 자신들의 운명을 동일시하기에는 한국 사회 자본주의의 구별 짓기distinction는 너무나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터진 노무현의 죽음에 눈을 감는 것은 어려웠다. 여기서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적 개인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고, 그가 대통령직에 있었던 시기 행했던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하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노무현은 자신들이 실제로든 아니면 상상으로든 만들고 공유해왔다고 생각했던 어떤 가치를 체현한 하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 상징이 검찰로 상징되는 공권력의 탄압으로 내몰리다 결국 자살로 끝을 맺었다는 것은 자신들이 한 때 가졌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던 가치들이 너무나 쉽게 침범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결국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집단적인 애도는 한 정치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라기보다는, 경제성장이라는 욕망을 위해 자신들이 스스로 포기해왔던 가치가 마침내 익사의 문턱에 와 있는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이자, 사태를 그 지경으로까지 몰아넣은 오만한 정치권력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애도라는 의례의 장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를 살해한 공통의 적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면서, 의례 참가자들 사이에는 친밀함이나 우정, 연대 등의 상호적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둘러싼 집단적인 애도정국에서 표출된 애도의 방법은 차라리 애도의 거부에 가까운 것이다. 여기서 애도의 거부란 한 개인의 죽음을 이해 가능한 한 정치인의 비극적 죽음으로 만들어내면서 과거를 종료시키는 것으로서의 이야기적 상기보다는 과거를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으로서의 ‘트라우마적 기억을 고수하는’ 태도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노무현의 죽음은 애도되었지만,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우리의 곁을 떠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현 정권이 치르는 애도 의례, 즉 시민들이 모인 시청 앞 광장을 경찰차로 빙 둘러 사람들의 참여를 막은 채, 소수의 정부 요인들이 모여 군악대의 반주에 맞춰 열리는 ‘국민장’이라는 거짓 의례에 대한 반감 및 분노의 표출이었다. 실제로 2009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사회의 정치적 지형도에서 생물학적으로 죽은 그가 끊임없이 소환되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도 애도 정국이었다.  
 
이영진, <아, 대한민국!>,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89-292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89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