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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남은 자의 부채

노(怒)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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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는 살아 있다는 죄의식과 부채의식에 시달렸다. 광주항쟁 당시 전라남도 도청에 끝까지 남아 생명을 던져버린 윤상원의 죽음도 부채의식과 관련된다. 윤상원의 부채의식을 임철우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물론, 오늘밤 우리는 패배할 것입니다. 아마 죽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우리가 모두 총을 버리고 그냥 이대로 아무 저항 없이 이 자리를 그냥 넘겨 줄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러기엔 지난 며칠 동안의 항쟁이 너무도 뜨겁고 장렬했습니다. 이제 도청은 결국 이 싸움의 마침표를 찍는 자리가 된 셈입니다. 시민들의 그 뜨거운 저항을 완성시키고, 고귀한 희생들의 의미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이곳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끝까지 여기 남겠습니다”(임철우, <<봄날>>). 많은 이들이 무기를 버리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한 선택의 권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었지만, 윤상원은 죽음을 선택했다. 동지들의 주검을 앞에 두고 그는 차마 살아남을 수 없었다. 죽은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그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하게 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살아남은 이들에게 또 다른 부채의식을 남기면서 분노를 잉태했다. 광주항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이들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통스러웠다. 문병란 시인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부채의식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대의 무덤 앞에 서면, 벌써 우리들의 입은 얼어붙는다. 말은 실천을 위해 있을 때 말이지, 말은 말을 위해 있을 때는 말이 아니다. 그대의 무덤은 우리에 남은 5월의 부채, 갚을래야 갚을 길 없는 생존자의 큰 빚이다. 살아남은 이들의 자괴감과 부채의식은 오랜 동안 그들을 괴롭혔다. 광주항쟁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은 광주에서 빠져나가 혼자만 살고자 했던 사실을 학생들의 부름을 받은 총학생회장으로서 심히 부끄러웠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로서의 자괴감과 부채의식이 그의 법정 최후진술에서 읽혀진다. 그는 “항쟁의 거리를 빠져나간 부끄러움을 간직한 제가”, “구천으로 떠나가 아직도 너무 원통해 두 눈을 감지 못하고 있을 내 동포, 내 형제들의 영령에 부끄럽지 않게”, “보잘것없이 부끄러운 저의 재판” 등의 자괴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박관현은 죽음을 선택했으며, 그의 죽음은 80년 이후 암암리에 활동을 모색 중이던 운동권을 결집시켜 활동을 표면화하게 한 도화선이 되었다(임낙평, <<광주의 넋 박관현>>). 이렇게 5월운동은 맥맥히 이어져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은 이들의 살아있다는 부끄러움과 부채의식은 여전하다. 이들은 고통과 분노,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스러움과 부채의식을 간직한 채 살아온 33년을 다음과 말한다. 도청 이야기만 나와도 친구가 생각납니다 내 친한 친구들이 죽었거든요 그 이후 나는 늘 악몽에 시달리면서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잘 견뎌내고 있다’ 말해주고 싶은데 죄스러운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살아있는 자의 부채죠. 이렇듯 살아있는 이들의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웠고, 그로 인한 분노는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소금이 되고 있다. 분노는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김창규, <지식인의 분노와 부끄러움>, <<우리시대의 분노>>,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255-257쪽.  
최유준 외저, <<우리시대의 분노>>, 감성총서 8,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3.  
  [감성총서 제8권] 우리시대의 분노, 255페이지    E-BOOK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