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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깨를 털면서

희(喜)
긍정적 감성
문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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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世上事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都市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온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1970년에 쓰여진 이 시는 균형감각을 잘 유지하고 있는 김준태의 대표작인 <참깨를 털면서>이다. 도시와 농촌이 대립하고 있으나 그 대립은 생경한 관념의 충돌이 아니라 고향의 할머니에게서 배운 삶의 교훈과 지혜가 자신의 도시적 삶을 건강하게 할 수 있으리라는 자기반성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시인이 ‘십년 가차이 살아본’ 도시의 삶 속에서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였으나 시골의 경작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유가 시의 내면에 숨어 있다. 그러나 그런 관념적 사유는 참깨를 터는 행위 속에 간접화되어 시적 긴장을 유발한다. 시인은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달리 말하면 자신의 계획대로 빨리 어떤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힘껏 참깨를 터는 행동의 조급성을 보여준다.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는 할머니의 꾸중은 젊은이의 행동이 앞서는 조급성이 자칫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동의 조급성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삶의 지혜와 교훈을 고향에서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신덕룡 편, [우리시대의 시인 읽기], 시와사람, 2000, 128~129쪽.